이야기를 품은 지명 '화제'
황산베랑길 이야기여행
명작의 무대 화제리 <1> 이야기를 품은 지명 ‘화제’
버스가 냉거랑다리에 선다. 물금~화제를 오가는 버스는 137번, 138번 등이다. 물금역에서 낙동강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두어시간 걸린다. 냉거랑다리는 현재 화제교를 일컫는 지역 토속어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화제리 풍경은 산자수명 그 자체다. 오봉산과 토곡산 등 영남알프스의 거대한 산군이 마을을 병품처럼 감싸안았고, 그 앞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아름다움 풍광이다.
화제리는 명언마을을 비롯해 외화, 내화, 지나, 토교 등 크고 작은 자연 마을 5개를 함께 아우르는 지명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로는 화정천과 화제천이 흘러 낙동강에 닿는다. 들판이 꽤나 넓다. 과거에는 목화 산지로 유명했으나, 요즘은 벼농사가 주종이다. 부촌은 아니라해도 모자랄 것도, 넘칠 것도 없이 유유자적한 농산촌이다.
화제리 자연마을은 이름이 독특하다. 감태봉(감토봉)·골마을·대밭각단(죽전)·새마(신촌)·서편·수산물·안독점이·중리·지나리·화정. 모두 자연을 닮았거나 닮고자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이름이다. 감태봉마을은 감태봉 밑에 있는 마을이며, 골마을은 명언마을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대밭각단은 대밭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수산물은 내화, 외화 중에 으뜸 마을로, 옛날 나루터 시절 배가 이곳까지 올라왔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마을들이 한 곳에 몰려 있지 않고 제각기 산자락을 물고 흩어져 앉은 모습이다.
화제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980년대까지 고인돌이 발견된 사실로 미루어보아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화제리 수산물과 도덕골 사이의 밭에서 상당수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지만, 마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되었다.
‘화제(花濟)’라는 지명은 ‘사람이 꽃을 건넌다’는 뜻이라고 한다. 화제리 외화마을 입구의 소나무 군락지가 마치 매화의 수꽃 형상이고, 맞은편의 명언마을 뒤편 연화봉은 매화의 암꽃 형상인데, 그 사이에 소하천이 흘러 ‘사람(마을)이 꽃을 건너는’ 모습이어서 화제가 되어다는 얘기다. 화제의 원래 한자어가 火濟라는 주장도 있다. 화제리에서 구정되는 지명 중 쇄편·갓골·불무골·다갈점·쇄꼬지골·도장골 등 무기와 불을 나타내는 지명이 많아 火濟라 불렸다는 것이다. 쇄편은 쇠의 조각, 불무골의 불무는 불의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를 말한다. 불 화(火) 자를 쓴 것은 화제일대가 고대에 가야의 철산지였다는 사실과도 연관된다. 따라서 화제는 ‘불(火)을 다루던 곳’이며 가야에서 원동면 지역은 ‘건너다 보이는(濟) 곳’이기에 ‘화제(火濟)’란 말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양산읍지초」(1878)에 화제를 ‘화자포교(火者浦橋)’라고 표현한 것도 흥미롭다. 어쨌든, 사람들이 떠나는 한국의 여느 농촌과 달리 화제리는 화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농촌이란 점에서 여러모로 화제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