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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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서상권, 김칠성, 김재준 등과 함께 경남군정청 경남도고문회의 고문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 경남도지부가 귀환동포를 구호하기 위하여
         조직한 ‘귀환동포 경남구호회’의 위원장을 맡아 적극적인 구호 활동도 전개하였다.
         1946년에는 ‘신탁통치배격위원회’ 재무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 3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
         원으로도 선출되었다. 조선민족혁명당 경남도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6년 4월 9
         일 군정 법령 제55호 정당등록법 위반혐의로 피검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1945

         년 12월 5일에 부산시 중구 동광동에서 창간되었던 ‘대중신문’의 발행인으로서 언
         론활동을 전개하였다.
         6.25전쟁 중 좌익계로 분류되어 육군 특무대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행방불명
         되었다. 현재 하북면 답곡리 성천 마을에 가묘가 조성되어 있다.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사상구 모라동 김녕김씨 유두문중의 재실에 애국
         지사 동산 김형기선생비가 세워져 있으며, 바로 옆에 동산 김형기 선생 기념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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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월 개관하여 운영 중이다.                                                  김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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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의원 전경
                      1935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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