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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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양산 통도사 마산포교당의 포교사로 활동하였다. 마산에서 서북지역 수재민
         을 돕기 위한 수재구제회가 조직되었을 때, 서무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3년 10
         월에는 마산 불교청년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이재부 理財部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1920년대 후반 진주불교포교당에서 법사로 있으면서 경북지역 기근민구제회
         창립시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하게 지역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대 중반 조선불교중앙교무원 평의원 총회의 의안과 결산, 예산 등 중요한 사항을 심
         사하는 심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30년대 중후반 양산의 지역유지로서

         1935년과 1939년에 양산 하북면 면협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조병구, 김말복, 김구하, 양만우 스님과 함께 일제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삶을 투신한 독립운동가 중에서 통도사에 적을 두었던 5명의 스님을 일컫는 ‘통도
         오절’로 불리고 있다. 1970년 2월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며, 1990년                    078
         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오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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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포교당 석탑 성체식 기념 사진
                   1922   |  통도사 극락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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