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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체험

물금 지명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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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베랑길 이야기여행

황산역의 영화를 찾다 <1> 물금 지명 산책

물금의 한자는 勿禁이다. 말 물에 금할 금. 필시 곡절이 있을 법하다. 물금은 옛날 관청에서 ‘금지한 일을 특별히 풀어주던 일’을 일컫는 말이다. 물금은 역사적으로 신라와 가야가 접경한 교통요충지로, 두나라는 전쟁이 나더라도 교역을 위해 이곳만은 상호 통행하도록 하자(금하지 말자)는 뜻에서 물금이란 지명을 붙였다는 것이다. ‘물고미(勿古味)’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고미 또는 구미는 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을 이르는데, 물(낙동강)이 굽어지는 곳이라 물구미에서 <물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곳이 홍수 피해가 많아 수해가 없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수금(水禁)→물금(勿禁)’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모두 그럴싸하다. 어원의 유래가 많다는건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곳 물금의 옛 지명이 ‘황산(黃山)’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 다. 물금에 ‘황산로’, ‘황산공원’이 있어 황산이란 말이 아주 낯설지는 않지만, 그 유래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황산은 최고의 역사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지명이 다. 시기는 삼국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1800여 년 전의 이야기인데, 낙동강 하류 물금 일대가 황산하(黃山河), 황산진구(黃山津口) 등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황산공원의 봄 / 황산공원의 가을

물금의 오봉산 일대는 가야시대에 철광석을 캐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아직도 물금광산 등이 남아있다. 철산지에서 항시 벌겋고 누런 녹물이 흘러내렸기 때문에 황산 이라 했다는 주장도 있다. 황산이란 말속에는 신라-가야시대의 철기 생산과 교역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셈이다. 물금지역은 낙동강 수로의 거점인데다 조선시대 때 동래에서 한양까지 이어진 영남대로(일명 황산도)의 주요 경유지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경부선 철도가 놓였다. 육 로와 수로가 함께 발달한 교통요충지였다. 황량한 들판이던 물금 일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양산(물금)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상전벽해가 되었다. 낙동강과 양산천을 낀 인구 15만 명을 수용하는 대형 신도시가 물금에 들어서면서 물금의 역사가 다시 쓰이고 있다. 물금의 변화를 보면 양산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2007년 물금읍 전경 / 2019년 물금읍 전경

맨 먼저 찾아가봐야 할 곳은 물금나루터와 월당나루터이다. 강바람 속에 말 달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타다닥~ 타다닥~’ 밀양과 울산(언양) 쪽에서 흙먼지를 잔 뜩 피우며 파발마가 달려온다. 파발마가 닿을 곳은 황산역(黃山驛)이다. 황산역은 조선시대 물금지역에 설치된 역참이다. 역참은 교통, 통신, 숙박 거점기관으로 국가 의 명령이나 공문서를 전달하고, 외국 사신이나 관리를 접대하기 위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말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관리들은 역마를 갈아타고 서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오늘날로 치면 기차역, 우체국, 여관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복합 행정기관 같은 곳이다. 황산역 터를 찾아가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역사의 기록은 생생 하게 남아 흐른다.

물금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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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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