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여행·체험

옛선인의발자취

  • sns 공유 리스트 열기
  • 본문 인쇄

옛선인의발자취

지금으로부터 약 1천3백년 전 원효대사가 기장의 천백암(千百庵)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암자에서 서쪽 하늘을 혜안으로 바라보니 중국 산동성에 있는 법운사에
천명의 신도가 불공하고 있는데 그 절이 곧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 원인은 그 벌의 법교(法敎)가 죄인으로서 벼락을 내려 천벌을 주려는 찰라였다.
따라서 천명의 신도들도 법교를 따라서 억울한 죽음를 당할 형편이었다.

그때 원효대사는 “해동원효(海東元曉)”라고 새긴 판자를 던지니 갑자기 법운사 주위가 금빛으로 변하였다. 신도들은 환한 금빛을 보고 이상히 생각하여 전부 밖으로 뛰어 나오자마자 그 절은 무너지고 신도 천명은 고스란히 목숨을 건질 수가 있게 되었다. 이것을 일컬어 “해동 원효 척판 구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천명의 신도들은 수륙만리 해동의 원효를 찾아 와서 제자되기를 청하였다. 원효대사는 천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천백암을 떠나 지금의 동래 범어사 쪽으로 가는 도중 내원사 입구(현 산신각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대사 앞에 무릎을 꿇고 나타나 몸과 꼬리로써 천성산을 가리켰다. 이상히 여긴 대사는 지금의 내원암으로 가니 동지섣달의 찬 겨울이었음에도 칡꽃 두 송이가 피어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자리를 정하였다는 전설에서 ‘중간에서 가로막는다’라고 하여 ‘중방’(하북면 중방)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자리를 정하고 정착하였는데 식량이 곤란하여 지금의 상북면 대석리 모래불이라는 동리에 거부(巨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쌀 한 되 가량 넣을 수 있는 바랑을 가지고, 그 집으로 동냥을 구하러 갔다. 하인이 쌀 한 되를 갖고 나와 부으니 반에 반도 못 찼다. 이상히 생각한 하인은 또 한 되, 또 한 되, 아무리 넣어도 그 정도라, 너무도 이상히 생각한 하인은 주인에게 고하였다.

아미타불입상주인은 도사임을 깨닫고 허리를 굽혀 그 소원을 물은즉, 대사는 일천 명 제자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유를 말하자 주인은 쾌히 해결해 줄 것을 승낙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화엄벌’에 집을 짓고 일천 명 제자를 가르치고, 자신은 보임(保任)공부를 하였다.
그 이후부터 그 산을 천성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또 절을 지어 원효암 (646년, 상북면 대석리 원적산)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88암자 중에 하나인 미타암은 심오한 아미타불입상과 원산폭포가 자랑거리다. 천성산 화엄벌을 시발점으로 동쪽으로 내려오면 제법 용자(勇姿)를 갖춘 절이 있으니 여기가 바로 천하의 신비를 간직하고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면서 중생의 번뇌를 씻어주는 아미타불이 자리 잡고 있는 미타암이다.
대운산은 울산광역시와 양산시 웅상읍 명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낙동정맥의 최고봉이며 원효대사의 마지막 수도지로 알려져 있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장안사를 비롯하여 원효대사가 수도했으며 중국의 [해동고승전]에도 그의 일화가 전해오고 있는 척판암.내원암 등이 있다.

천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내원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대둔사를 창건하면서 주위에 89개 암자를 두었다고 전해온다. 내원사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며, 예부터 소금강이라 불리 울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이 있는 곳에 세워져 있다.
담당부서
양산시청
담당자
양산시청
전화
055-392-2114
최종 수정일
2020-10-20
이 화면의 내용에 만족하셨습니까?